📑 목차
하루를 살다 보면 머리로는 분명 알고 있는데,
정작 몸은 그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을 때가 있다.
해야 할 일을 알고 있고,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 하는지도 이해하고 있는데
막상 몸은 그리로 향하지 않는다.
눈앞에서 시간을 쓰는 법도 알고 있고,
지금 행동해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몸은 다른 곳에 머물러 있다.
나는 이런 순간을 오래도록 ‘게으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이 현상 속에는 게으름으로 설명할 수 없는
훨씬 복잡한 감정과 리듬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머리는 이미 길을 알고 있었지만,
몸은 아직 그 길을 향해 걸을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그 간극을 기록해보려 한다.
머리와 몸 사이에서 생겨나는 틈,
아는 것과 움직이는 것 사이의 미묘한 거리,
그리고 그 사이에 숨어 있던 나의 마음을 살펴보는 시간이다.
1. 알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순간의 묘한 정적
머리로는 안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는 것,
지금 잠깐 집중하면 금방 끝날 일이라는 것,
이걸 미루면 결국 내일의 나에게 더 큰 부담이 된다는 것.
하지만 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몸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진다.
손끝이 움직이지 않고,
다리가 무겁고,
눈은 계속 다른 곳을 향한다.
그 순간의 나는
“왜 움직이지 못할까?”라는 생각과
“조금만 쉬고 시작하자”라는 핑계 사이에서
묘한 정적 속에 머문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그 순간은
단순히 의지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마음이 이미 다른 감정을 품고 있는 상태였다.
2. 머리가 앞서가면 몸은 따라오기 어렵다
머리는 늘 빠르다.
논리와 계획은 언제나 앞에 있다.
해야 할 일을 목록으로 정리하면
머리는 금세 전체 구조를 파악한다.
하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몸은 속도가 느리고,
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고,
리듬의 영향을 그대로 드러낸다.
머리가 너무 빨리 앞서가면
몸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중간 지점에서 멈추게 된다.
그 멈춤이 바로
“아는데도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간극이 길어질수록
자책은 커지고, 몸은 더 무거워진다.
3. 몸이 따라오지 않을 때는 대부분 감정이 뒤에서 잡아당긴다
몸은 논리보다 감정의 언어를 따른다.
그래서 머리는 지금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몸은 그 말보다
피로, 걱정, 불안, 실패에 대한 기억 같은 감정들을 더 크게 느낀다.
특히 몸이 멈추는 날은
대부분 감정이 복잡하거나 지친 날이었다.
- 지금 시작하면 실패할까 봐
- 막상 하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
- 완벽하게 하지 못할까 봐
- 충분히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 이 일을 끝내면 또 다른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
이 감정들 앞에서
몸은 쉽게 굳어버렸다.
머리는 괜찮다고 말해도
몸은 이미 멈춤의 자세를 취한 것이다.
4. 몸이 멈추는 순간엔 ‘나를 지키려는 마음’이 먼저 작동한다
예전엔 몸이 움직이지 않는 게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깨달았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때로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지칠 것 같아서,
피곤할 것 같아서,
마음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아서.
몸은 감정의 신호를 아주 정확하게 알아차린다.
그래서 위험하거나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미묘하게 행동을 멈추며
“지금은 아니다”라는 신호를 먼저 보낸다.
머리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고
‘왜 지금 안 해?’라고 다그치지만,
몸은 이미 나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5. 생각보다 큰 ‘에너지의 간극’
단순히 의지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요구하는 에너지와
몸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에너지 사이의 간극이 있었다.
머리는
“지금 바로 하는 게 효율적이야.”라고 말하지만
몸은
“나는 아직 에너지가 부족한데…”라고 말한다.
이 간극을 무시하면
몸은 더 쉽게 지치고,
피로는 마음으로 번지며
결국 아무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이 간극을 이해하는 것이
몸이 따라오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는 첫걸음이었다.
6. 머리와 몸 사이에 있는 감정들을 바라보다
나는 아는 것과 움직이는 것 사이의 틈을 살펴보며
감정의 패턴을 조금씩 발견했다.
● 1) 두려움이 앞설 때 몸은 멈춘다
실패나 실수가 두려우면 몸은 먼저 움직이지 않는다.
● 2) 기대가 높으면 몸이 더 부담스러워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몸이 더 느려졌다.
● 3) 피로한 날은 작은 일도 커 보인다
감정의 용량이 줄어들면 몸은 쉽게 멈춘다.
● 4) 익숙함 속에 머물고 싶어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보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는 마음이 몸을 잡아당긴다.
이 네 가지는
머리는 아는데 몸이 따라오지 않았던 순간들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 감정의 패턴이었다.
7. 멈춤의 순간 뒤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머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몸이 움직이는 것 사이에
괴리가 생기면 자꾸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왜 이렇게 의지가 없을까…”
“왜 이 작은 일도 못하지?”
하지만 돌아보면, 몸이 멈춘 날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 수면 부족
- 감정 소모
- 과한 기대
- 불필요한 걱정
- 반복되는 자책
- 자신감의 흔들림
몸은 이 신호들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 머리에게
그저 ‘멈춤’이라는 방식으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8. 앞으로 고쳐야 할 일들
머리와 몸이 따로 움직이는 하루가 반복되지 않도록
나는 몇 가지의 작은 방향을 세워 보기로 했다.
1) 머리의 속도 줄이기
몸의 속도와 맞춰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었다.
머리는 너무 빠르기 때문에 간단한 일도 크게 느껴지곤 했다.
2) 감정이 흐트러지는 시간대 파악하기
몸이 멈추는 시간대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 시간에는 무리한 계획을 배치하지 않기로 했다.
3) ‘작은 행동’부터 시작하기
몸은 작은 움직임에는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큰 계획보다 작은 움직임이 훨씬 효과적이다.
4) 완벽한 결과를 요구하지 않기
완벽을 향한 마음은 몸을 가장 먼저 멈추게 한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태도가 필요하다.
5)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기
피로, 지침, 부담감은 몸에서 올라오는 중요한 메시지다.
이 신호를 듣는 것이 오히려 효율적이었다.
9. 머리와 몸의 간격을 인정하는 일
이제는 머리와 몸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 않을 때
그 틈을 억지로 좁히려 하지 않는다.
그 틈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였다.
머리는 이미 도착해 있지만
몸은 아직 출발선 근처에 머물러 있을 뿐.
그 간격은 실패가 아니라
나의 리듬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시간이었다.
10. 오늘의 나를 정확히 이해하는 연습
머리는 알고 있는데 몸이 따라오지 않는다는 건
내가 나를 이해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감정의 결, 에너지의 흐름, 마음의 리듬.
그 모든 것을 이해해야 몸이 움직일 수 있었다.
오늘도 머리는 한참 앞에 있지만
몸은 천천히 따라오고 있다.
그리고 그 느린 걸음을 인정하는 순간,
나는 죄책감보다 평온함을 먼저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