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 고드름이 매달린 처마 밑 풍경이 그리운 이유

justice0121 2025. 11. 5. 23:50

기후변화로 고드름이 사라지며 겨울 풍경이 바뀌고 있다.
눈 오는 날의 처마 밑 고드름은 단순한 얼음이 아니라
한국의 겨울 정서를 상징하던 추억이었다.

한때 한국의 겨울은 눈과 고드름으로 기억되었다.
눈이 내리던 날, 시골집 처마 밑에는 맑고 긴 고드름이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은 그 고드름을 부러뜨리며 웃었고,
어른들은 그것을 보며 겨울의 기운을 느꼈다.

눈 오는 날 고드름이 매달린 처마 밑 풍경이 그리운 이유
고드름은 단순한 얼음 덩어리가 아니라
겨울이 만들어낸 자연의 예술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풍경은 점점 보기 어렵다.
눈은 줄고, 추위는 짧아졌으며,
겨울의 냉기가 오래 머물지 않는다.

고드름이 사라진 것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가 아니라,
한국의 겨울 감성이 사라지고 있다는 신호다.

H2. 고드름이 만들어지는 겨울의 과학

고드름은 눈이 녹으면서 다시 얼 때 생긴다.
낮에는 햇살에 눈이 녹아 지붕 끝으로 흐르고,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며 그 물줄기가 얼어붙는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길고 투명한 고드름이 자라난다.
즉, 고드름은 낮과 밤의 온도 차가 큰 환경에서만 생긴다.

과거 한국의 겨울은 -10도 이하의 추위와 맑은 하늘이 이어졌기에
고드름이 흔했다.
그러나 최근 10년 사이,
기온은 일정하게 따뜻해지고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줄어들었다.

결국 고드름이 자랄 수 있는 조건이 사라진 것이다.
기후의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게
겨울의 풍경을 재구성하고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1월 평균 기온은 최근 30년간 약 1.7도 상승했다.
이 미묘한 변화가 고드름의 운명을 바꾸었다.
예전에는 눈이 내리면 일주일 이상 녹지 않았지만,
이제는 하루 이틀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지붕 위 눈이 오래 머물지 않으니
고드름도 형성되지 않는다.
눈 대신 비가 내리는 겨울,
차가운 바람 대신 포근한 공기,
이제 겨울의 촉감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후변화는 계절의 형태를 바꾸는 조용한 조각가다.

고드름 하면 떠오르는 풍경은 단연 시골의 한옥이다.
기와지붕의 끝자락마다 얼음이 맺혀
마치 유리 방울처럼 반짝였다.

아이들은 장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
가장 긴 고드름을 찾아 부러뜨렸다.
그 차가운 소리,
입에 대면 느껴지던 얼음의 감촉,
그리고 어머니가 “떨어질 때 맞지 말라”고 하던 목소리.
그 모든 것이 겨울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골의 지붕은 슬레이트나 금속으로 바뀌고,
눈이 쌓일 틈조차 없다.
풍경이 바뀌자 기억의 질감도 달라졌다.
고드름은 단지 자연현상이 아니라
시대의 감정을 담은 풍경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도시에서는 고드름을 거의 볼 수 없다.
건물의 지붕은 대부분 열선(熱線)으로 눈을 녹이기 때문에
물이 얼 시간이 없다.

도로와 인도도 제설제 덕분에 항상 젖어 있지만 얼지 않는다.
도시는 겨울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대신
계절의 표정을 잃었다.
눈이 내리면 불편하다고 느끼고,
고드름은 위험하다고 판단한다.

결국 도시의 겨울은 춥지만 얼지 않는 인공의 계절이 되었다.
자연의 질서는 사라지고
편리함만 남은 공간에서
사람은 점점 겨울의 본모습을 잊고 있다.

고드름이 사라지며 함께 사라진 것이 있다.
바로 겨울 아침의 냄새다.
차가운 공기 속 얼음의 냄새,
눈과 나무가 뒤섞인 상쾌한 향.
그 냄새는 눈 오는 날,

처마 밑 고드름이 반짝일 때 느껴졌다.
하지만 요즘의 겨울 공기는 건조하고,
미세먼지와 스모그가 섞여 있다.

맑은 냄새 대신 답답한 공기가 남았다.
사람의 후각은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냄새가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고드름의 부재는 감정의 부재로 이어진다.

고드름은 겨울의 리듬을 보여주는 지표였다.
눈이 내리고, 녹고, 다시 얼며
자연은 스스로 순환의 질서를 유지했다.
이 질서가 무너지면
자연의 생태도 흔들린다.

얼음이 적으면 토양의 병충해가 더 오래 남고,
눈이 덮이지 않으면 땅이 쉬지 못한다.
즉, 고드름은 단지 풍경이 아니라
겨울 생태의 신호체계였다.

그 신호가 끊기자
자연은 방향을 잃고,
사람은 계절의 감각을 잃었다.

이제 고드름은 현실이 아니라 기억 속 장면으로 남았다.
사진첩 속 흑백 이미지,
어릴 적 눈 내리던 날의 냄새,
그리고 따뜻한 난로 곁에서 바라보던 창밖 풍경.
그 안에서만 고드름은 여전히 반짝인다.

하지만 그리움이 커질수록
현실의 겨울은 점점 더 멀어진다.

기후가 바꾼 것은 날씨가 아니라 감정이다.
사람은 여전히 겨울을 기다리지만,
그 겨울은 이제 다른 얼굴로 다가오고 있다.

기후전문가들은 말한다.
“고드름이 다시 생길 수 있는 겨울을 만들려면
지구 평균 온도를 1.5도 낮춰야 한다.”
그 숫자는 거대하지만,
그 시작은 작다.

난방을 조금 줄이고,
불필요한 전기를 아끼고,
자연의 순환을 방해하지 않는 작은 행동이 필요하다.

고드름은 거대한 기술이 아니라
자연이 스스로 만든 예술이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예술이 다시 태어날 수 있는 조건을 되돌려주는 것이다.

사람이 고드름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은 시간이 천천히 흐르던 겨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고드름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녹았다가 얼고, 다시 얼며 조금씩 자란다.

그 느린 시간 속에서 사람은 기다림을 배웠다.
하지만 지금의 겨울은 너무 빠르고,
모든 것이 녹아버린다.
고드름을 그리워한다는 것은
사라진 겨울뿐 아니라,
사라진 느림의 감정을 그리워하는 일이다.

기후가 바꾼 것은 풍경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눈 오는 날,
고드름이 매달린 처마 밑 풍경은 더욱 그리운 것이다.